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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우리, 이 음악 Vol. 1
글쓴이 : 플로이드     등록일 : 2018.06.08 15:36:41     조회 : 665

이 코너는 1980년대 전후의 음악을 사랑했던 우리에게는 추억을, 2000년대 전후 시절의 음악에 열광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억을 전하고자 준비되었다. 소리샵에서 소개하는 <그때, 우리, 이 음악> 시리즈를 통해 시대를 상징했던 여러 뮤지션과 대표적인 음악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Who Is..
이시영은 1989년 한국 헤비메탈 최초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평가받는 『Friday Afternoon』 시리즈 2집에 「Loving Tonight」로 참여했던 밴드 프라즈마(Plasma)의 보컬로 앨범 데뷔했다. 한국 헤비메탈의 융성과 함께 성공적인 데뷔를 가졌던 이시영은 1989년 테크니션 배재범(기타) 등과 함께 전설로 기록되는 바로크메탈 밴드 디오니서스(Dionysus)를 조직해서 2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1990년 임덕규(기타)와 박인호(베이스), 김동규(키보드)와 함께 명밴드 스트레인저(Stranger)를 조직해서 활동을 재개했다.

1993년 이시영은 안회태(기타)와 서안상(베이스), 박철우(드럼) 등 한국 록음악의 주요 축을 형성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새로운 밴드 미스테리(Mystery)를 결성해서 다시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동년 솔로 1집을 발표한 이후 1997년에 자신이 프런트맨으로 나선 하드록 밴드 모비 딕(Moby Dick)을 결성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An Episode..
이시영은 서양인을 연상시키는 체형과 넓은 하관을 지닌 보컬리스트이다. 이러한 외형에 더 해진 그의 많은 연습량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영역의 실력으로 자연스레 쌓일 수 있었다. 함께 활동했던 멤버들에게 ‘연습벌레’로 통하는 이시영도 과거 글쓴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백두산 출신의 김도균(기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고 전한 적이 있다.


현재 최소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최경섭(드럼)을 맞이해서 3인조 체제로 『Baek Doo San III』를 준비 중이던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전한다. “방이 여러 개 있는 연습실이었는데, 옆방에서 도균이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메트로놈에 맞춰 기껏해야 두 마디 정도를 연습하는 거 같았죠. 근데 그 두 마디를 계속해서 반복하더군요” 미스테리의 데뷔 앨범을 위해 연습실을 찾았던 이시영은 멤버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의 연습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순간 백두산의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시영은 물론 멤버 모두가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연습실에 들어갈 때 들리던 백두산의 연습 파트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던 거죠” 혹시나 해서 이시영은 연습실 사장에게 “설마 저 프레이즈만 두 시간 동안 연습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연습실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3시간이 넘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도균이 형만큼 완벽주의자에, 그 완벽을 위해 많은 연습을 하는 뮤지션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이시영은 강조했다.


(출처: 동아콘서바토리) 

데뷔 이후 1,500회 이상의 라이브를 소화해 나온 이시영은 경상도 사나이 고유의 다혈질의 소유자로 서안상과 안회태 등 음악계에서 자존감이 무척 센 뮤지션들과도 소통이 원활한 대인배로 통한다. 서강전문학교의 전임교수와 대구예술대학교의 교수를 겸하며 밴드 모비 딕의 활동을 잇고 있는 이시영은 후배 양성에도 많은 공을 들여오고 있다.

특히 자신의 밴드에 새롭게 가입하는 동료들에게 뮤지션이 가져야 할 덕목과 성향을 개선하는데 무척 신경을 많이 쏟는 편이다. 데뷔 당시 부활 출신의 보컬 이승철과 동명으로 활동했던 이시영은 하드록부터 헤비메탈, 팝, 포크,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창법과 스타일을 지닌 뮤지션이자 작곡·작사가이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한 장면

데뷔 이후부터 이시영은 록과 헤비메탈의 장르 안에서 김종서와 이승철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가창력과 스타일, 그리고 폭넓은 스케일과 리더십을 지닌 뮤지션으로 인정받아왔다. 이시영은 메인스트림 범주 안에서 2000년 류승완이 연출하고 류승범이 출연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엔딩에 흐르는 「Is The End」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양아치보다 양아치 같은 연기를 펼쳤던 류승범이 극 중 비참하게 죽어가던 장면에서 고즈넉하게 흘렀던 「Is The End」는 보컬 지망생들의 로망과도 같은 음악으로 통하는 곡이다.


헤비메탈 옴니버스 앨범 Friday Afternoon II 자켓 사진

이시영이 앨범 데뷔를 하던 당시, 그는 프라즈마의 멤버였다. 스타일적으로 팝록에 가까웠던 『Friday Afternoon』 시리즈 2집에 수록된 「Loving Tonight」은 현재의 이시영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보컬이 담겨져 있다. 프라즈마의 원년 보컬은 조현수였다. 1988년 결성된 프라즈마는 임창수(기타)와 이수용(드럼), 이동준(키보드)을 주축으로 시작되었다. 프라즈마 이후 임창수와 이수용은 신해철이 결성한 넥스트(N.E.X.T)의 멤버로 활동했다. 이수용은 프라즈마 활동 당시에 콜라에 지독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연습이나 공연을 마치고 나면 드럼 세트 주변에 빈 콜라병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을 정도였다.

이동준은 영화 <은행나무침대>,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등에 음악을 담당하며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쌓았다. 일편 이시영은 국내 보컬리스트 가운데 가장 복이 많은 뮤지션으로 회자된다. 디오니서스의 배재범, 스트레인저의 임덕규, 미스테리의 안회태, 모비 딕의 신현태(기타) 등 한국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전개해 나왔기 때문이다.


Who Is..
김창완(보컬, 기타)을 중심으로 김창훈(베이스)과 김창익(드럼) 삼 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은 1977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을 위해 결성된 무이를 전신으로 하는 밴드이다. 1977년 서라벌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1집 앨범에서 [아니 벌써]가 크게 히트하며 데뷔와 동시에 대형밴드로 인정받았다.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주로 연주하던 밴드들과 달리 산울림은 음반과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를 토대로 지금까지 산울림은 13장의 정규 앨범과 프로젝트 앨범, 기획 앨범 등 100여 장의 앨범을 발표해 나왔으며, 8백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했다. 산울림의 등장과 이들이 남긴 음악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정권의 탄압으로 주춤하던 대중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물론 작품성과 진취적인 연주력 등을 통해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와 1990년대 인디의 등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An Episode..


이렇게 깔끔하고, 산뜻한 어른의 동화가 있을까. 가사의 맥은 너무나 천진난만하며, 멜로디는 지극히 정겹고, 사운드는 흥겨움 가득하다.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 선물 제3집』은 산울림의 ‘동요 시리즈’ 중 3집이자, 마지막 시리즈물이다. 좀 더 정확히 이 앨범은 산울림이 1979년 처음 시도했던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 선물’의 주요 히트곡이었던 「개구쟁이」와 「산할아버지」를 잇는 연작 개념의 곡들로 채워졌다. 산울림이 이러한 기획을 시도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산울림의 동화적인 작법이 가장 큰 배경을 이뤘으며,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던 김창완의 청량하면서도 솔직한 목소리도 한몫했다.


(출처 위키 미디어:https://bit.ly/2IWDt2B)

산울림의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먼저 산울림은 가족 단위로 구성된 밴드로 싸이키델릭록과 하드록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가사를 담은 감성적인 음악을 구사했다. 또한 김창완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만든 데뷔 앨범 [아니 벌써]를 통해 가요정화 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잔뜩 움츠렸던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빛과 흐름을 이끌어 찬란한 1980년대 대중가요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진화적인 측면에서 록 음악은 여러 장르와의 결합 속에서 더욱 큰 변화와 역할을 담당해 나왔다.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 선물 제3집』은 팻 분(Pat Boone)이 1997년 발표한 [In A Metal Mood : No More Mr. Nice Guy]를 연상시킨다. 물론 산울림의 앨범은 팻 분의 작품보다 훨씬 앞서 시도된 음악적 유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히트했던 여러 록 넘버를 팻 분이 어덜트 컴템퍼러리 계열로 리메이크했던 것과 달리, 산울림은 순수 창작동요에 록비트와 디스트 사운드를 가미해서 ‘어린이를 위한 록 음악 가이드’를 완성했다. 1979년부터 시작된 동요 1, 2집에서 김창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재킷으로 사용했던 것과 달리 시리즈 3집인 본작은 산울림 고유의 재킷 디자인 시스템으로 제작된 것도 특징적이다.


(출처: 플리커 Jinho Jung https://bit.ly/2sfPz08)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3집』은 산울림의 정규 8집 발매 직후인 1982년 4월, 그해 어린이날에 맞춰서 발표되었다. 데뷔 이후 산울림은 엄청난 양의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었다. 영화 <내일과 내일>의 OST를 시작으로 동요 1집과 정규 4, 5, 6, 7집과 동요 2집, 그리고 8집과 본 앨범을 순차적으로 내놓기까지 채 2년여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앨범의 컨셉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 쯤 경험했을 초등학교의 운동회를 소재로 제작되었다.

줄다리기와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연출한 ‘이게 웬 긴 꼬리냐’와 ‘뱅뱅 굴러’는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흥미로운 트랙이다. 또한 산울림의 기존 앨범과 흡사하게 이 앨범에도 한국 전통 가락을 록 비트에 접목한 곡들이 눈에 띈다. 「먼길」과 「새봄」이 바로 그 곡들로써 성장한 어린이가 느끼게 될 추억 속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작풍은 산울림의 세형제가 어린 시절에 겼었던 불우한 가정환경에 기인하는데, 동요를 통한 순수함의 표출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과 슬픈 마음을 음악을 통해 스스로 다스리기 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산울림이 어린이와 어른이 된 어린이 모두에게 선사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앨범은 운동회의 즐거움과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공존하는 감성 가득한 작품이다. 이후에도 산울림은 <슈퍼 삼총사>와 <이티 이야기> 등의 어린이 영화에 사운드트랙을 담당했으며 1984년 『동요완국』과 『동심의 노래』까지 발표하며 여전히 대중음악 속에서 어린 날과 어린이들의 순수를 노래했다.


(출처: 한국대중가요앨범)

Who Is..

정서용은 1986년에 개봉한 영화 <청 블루스케치>에서 스캣송 「그대를 사랑할 수 없고」로 데뷔했던 실력파 보컬리스트이다. 신촌블루스 1집의 헤로인이 한영애였다면, 2집의 히로인은 정서용이었다. 정서용 보컬의 특징은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음압을 다채롭게 사용한다는 점과 자유자재로 오가는 고음역대의 창법이 매우 훌륭하다는 점이다.

신촌블루스와의 협연 속에서 정서용은 초기 블루스의 명보컬로 통하는 베시 스미쓰(Bessie Smith)를 연상시키는 성량과 화려한 노래 실력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서용은 신촌블루스 계보 안의 여타 선후배들과 달리 솔로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94년 2집 앨범 발표 이후 정서용은 큰 활동 없이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연상시키듯 조용히 음악에 묻혀 생활하고 있다. 

An Episode..

1980년대 중반 박두병이 운영하던 추바스코에서 활동하던 정서용은 다운타운가에서 노래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보컬이었다. 엄인호는 신촌블루스 앨범 제작의 계기가 된 클럽 레드 제플린에서의 활동을 위해 한영애와 호흡을 맞출 새로운 여성 보컬을 찾고 있었다. 추바스코를 우연히 들른 엄인호는 정서용의 노래 솜씨에 감탄하며 그녀에게 함께 활동할 것을 제안했다. 정서용은 주저하지 않고 신촌블루스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신촌블루스의 1집 『그대 없는 거리』는 여성 보컬리스트 한영애와 정서용의 가창이 주가 된 음반이었다. 1년 터울로 발표된 신촌블루스의 1집 『그대 없는 거리』와 2집 『황혼』은 경향신문에서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각각 42와 45위에 랭크되었다. 1집보다 한층 더 블루스 적인 색채가 강하게 배였던 신촌블루스의 2집은 김현식과 정서용이 주요 곡에서 가창을 담당했다.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 「황혼」과 「빗속에 서 있는 여자」를 노래한 정서용은 한영애를 잇는 새로운 명품 보컬리스트로 손꼽혔으며, 솔로 데뷔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동아 기획 김영 사장이 오랫동안 관심을 보였던 보컬 정서용은 신촌블루스 뮤지션 가운데 기성 가수를 제외하고 제작된 음반의 첫 주인공이었다. 정서용의 소개로 신촌블루스와 인연을 맺었던 정경화와 이은미의 솔로 데뷔는 그녀의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배경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다운타운가에서 활동하던 여성 보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정서용의 솔로 데뷔 앨범에는 블루스와 포크, 록을 넘나드는 다양한 창법이 실려 있다. 특히 라디오에서 많은 신청을 기록한 「비의 춤」은 정서용을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발표 당시 「비의 춤」은 해외의 유명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파블로브스 독(Pavlov's Dog)의 보컬 데이비드 서캠프(David Surkamp)를 연상시킬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앨범 내 8곡의 수록곡 가운데 정서용은 「혼자서도」 등 3곡에 작사로 참여했고, 2곡을 작곡했다. 조동익과 이정선의 편곡이 빛난 이 앨범에서 두 사람은 각각 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 세션까지 담당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를 거친 이후 새로운 밴드 빛과 소금을 결성했던 장기호는 「어떤 하루」에 코러스와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했다.

또한, 데뷔 앨범 발매 이후 작곡가로 바쁘게 활동하던 김현철은 앨범의 첫 곡 「휴가」를 작사․작곡해서 제공했고, 코러스와 키보드 파트에도 세션으로 참여했다. 수록곡 가운데 이채로운 트랙은 앞면 마지막 트랙에 위치한 「여인#4」이다. 이 곡은 원래 1979년 대한음반제작소에서 제작한 앨범 『왔다가 그냥 갑니다/잊을 수가 없어요』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정선이 작사·작곡해서 이광조가 불렀던 노래이다.


이 앨범의 제작이 완료되던 1990년 3월경 동아기획과 서라벌 레코드는 발매 스케줄이 꽉 차 있었음에도 기대를 모으던 정서용의 앨범을 재빠르게 제작해서 유통했다. 발매 당시에 LP가 먼저 유통되었고, 한 달 후에 CD와 카세트테이프가 동시에 발매되었다. 수록곡 가운데 「휴가」와 「혼자서도」는 각각 동아 기획이 1993년에 제작한 옴니버스 앨범 『우리 모두 여기에 1』과 『우리 모두 여기에 2』에 수록되었다. 초기 신촌블루스를 상징하고 블루스와 포크, 록을 넘나드는 다양한 가창을 선보였던 정서용은 현재 홍대 상상마당 근처에서 라이브 바 샐리 기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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